간호사

병원 내 인간관계, 간호사는 어디에 서 있나

godong-news2506 2025. 7. 12. 23:23

병원이라는 특수한 조직에서 간호사가 마주하는 첫 번째 벽

 

나는 간호사로 병원에 입사한 첫 해, 가장 먼저 부딪힌 건 의료 기술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거리감이었다. 병원은 철저한 서열과 직무 구분이 존재하는 조직이다. 의사, 간호사, 행정직, 의료기사 등 다양한 직종이 한 공간에서 일하지만, 각각의 역할은 명확하게 나뉘어 있고 서로 간의 기대치는 다르다. 간호사는 그 중심에서 의료진과 환자 사이를 연결하고, 동시에 병원 내 다양한 직군과도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그 소통이 ‘상호존중’이 아니라 ‘기대와 요구’로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간호사는 조직 안에서 꼭 필요한 존재지만, 그만큼 외롭게 고립되기 쉬운 위치에 서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의사와 간호사 사이, 이상과 현실의 간극

 

많은 사람들이 간호사와 의사는 환자의 생명을 함께 지키는 파트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이상적으로는 그래야 한다. 하지만 내가 병동에서 느낀 현실은 달랐다. 의사는 진단과 처방을 담당하고, 간호사는 그 처방을 실행하며 환자의 상태를 24시간 관찰한다. 그러나 간호사의 전문성과 판단은 종종 ‘전달자’ 이상의 가치로 인정받지 못한다. 나는 환자의 미세한 증상 변화를 감지하고 보고했지만, “조금 더 지켜보자”는 대답으로 묵살된 적이 많았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실제로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된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험이 쌓일수록 나는 ‘의사와 간호사는 수평적인 협업 관계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다행히 일부 의료진은 간호사의 역할을 존중하고 함께 판단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현장은 그렇지 못하다. 그 틈에서 간호사는 자주 침묵을 선택하고, 혼자 감정을 삼키게 된다.

 

병원 내에서의 간호사의 인간관계

 

병원 내 타 직군과의 관계: 간호사는 늘 중간자적 위치에 있다

 

간호사는 의사 외에도 수많은 직군과 협업한다. 병동에서는 간호조무사, 병원보안팀, 원무과, 약제과, 방사선과, 임상병리과 등과 끊임없이 연락을 주고받는다. 간호사가 단순히 의사 처방을 전달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검사 일정을 조율하고, 환자 보호자의 민원을 중재하며, 때로는 인수인계 과정에서 다른 팀과 갈등을 조율하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간호사는 종종 ‘감정의 창구’가 된다. 환자가 화가 나면 간호사에게 쏟아붓고, 의사의 지시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간호사에게 따지는 경우가 많다. 병원 내에서 간호사는 감정적 완충재 역할을 하면서도, 실질적인 권한은 적다. 그래서 나는 종종 ‘간호사는 많은 책임을 지지만, 책임질 수 있는 권한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중간자적 위치는 간호사를 심리적으로 지치게 만들지만, 동시에 병원이 제대로 돌아가게 만드는 숨은 중심축이 되기도 한다.

 

인간관계의 피로를 줄이는 나만의 생존 전략

 

간호사로서 병원 내 인간관계를 버티며 나는 몇 가지 생존 전략을 익혔다. 첫 번째는 '감정을 빨리 정리하는 기술’이다. 누군가의 날 선 말이나 부당한 대우에 마음이 상해도, 그 감정을 오래 품고 있으면 결국 나만 병든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짧게 기록하고, 퇴근 후에는 꼭 ‘내가 누구의 말에 상처받았는가’보다 ‘내가 오늘 얼마나 잘해냈는가’를 되새긴다. 두 번째는 ‘적당한 거리 유지’다. 모든 사람에게 완벽하게 친절하려 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나를 지켜준다. 마지막으로, 나는 병원 외부에 ‘내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었다. 그것이 동료 간호사든, 가족이든, 친구든 상관없다. 이 작은 전략들이 병원이라는 복잡한 인간관계의 정글 속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도록 도와줬다. 간호사는 어디에 서 있는가?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간호사는 병원의 중심에 서 있다. 다만, 그 중심이 항상 보이지 않을 뿐이다.